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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생활

180525 남산 북악산 팔각정 야간 라이딩

루치랑 같이 2018. 6. 1. 22:33


남산 넘어 북악타고 치킨먹으러 다녀온 라이딩

슈퍼랜도너까지 함께했던 성우형!
잘타던 그도 아프고 일이 바쁘고
이래저래 자전거 못타 초기화가 되고
거의 라이딩 못하고 있었는데
이날 라이딩 한다고 톡이 왔다.
라이딩 끝나고 뒷풀이 없었으면 그냥 동네나 타거나 평로라 타거나 했을 텐데..
치킨 뜯자는 이야기에 얼굴이나 볼겸 남산과 북악산 코스를 타고 연신내로 넘어갔다.
인천에서 점프해온 영환이도 있고 겸사겸사!!

 

한강북단길을 타고 한남나들목을 통해서

한남5거리  / 남산 국립극장 앞

남산타워

서울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은 왔거나 올 예정일 남산!!

남산에서 북악코스를 가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숭례문

차 없을 때 찍었어야 했는데 그래도 잘 찍힌거 같아서 다행이다.

 

북악가는 중에 신호에 여러번 걸렸다.

주변을 돌아보면 보이는 것들 서울 시청도 있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고종 고종즉위 40주년 칭경기념비도 보인다.

 

경복궁 앞 / 자하문 (흔히 말하는 만남의 장소로 불리는 북악 초소 근처)

 

팔각정 도착 / 모터사이클 모임이 있는지 엄청 많은..
남산 북악 라이딩 이렇게 끝!!
그럼 이제 먹으러 가즈아!!

구산역 근처에 있는 또봉이 치킨으로!!

 
 

이런저런 수다 떨고 다시 집으로!
왔던 길 그대로!!

그래야 좀더 코스가 짧다!!
이전 같으면 한강으로 돌아서 가겠지만
얼른 가서 쉬고 내일 라이딩을 준비해야 하니 ㅎㅎ

금요일 야간 라이딩 끝!!

라이딩로그!!





중간에 봤던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기념비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져서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광화문 네거리 북동쪽 모퉁이에 ‘기념비전’(殿)이 있고, 그 안에 비석이 하나 있다. 

이 비는 ‘대한제국대황제보령망육순어극사십년칭경기념비’()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줄여서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라고 부른다.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이 즉위 40주년이 된 것과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 51세로 기로소()에 들어간 일,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던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대한제국기인 광무 6년(1902)에 세운 것이다. 

기로소란 나이 일흔이 넘은 정2품 이상의 고위 관원을 예우하기 위해 경로()의 예로 모셨던 관청을 말한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최고급 경로당에 해당된다. 

이러한 제도에 따라 임금도 나이가 들면 특별히 기로소에 이름을 올리지만 조선시대 왕들은 대부분 장수하지 못하여 그 예가 드물다. 

태조가 60세 되던 1394년 고려시대 제도로 이어져오던 기영회()에 들어갔고, 

숙종이 59세에 망육(),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앞당겨 기로소에 적을 올렸으며, 영조는 51세가 되던 해를 망육이라 하여 이름을 얹었다. 

이러한 영조의 전례에 따라 고종도 51세에 기로소에 들어갔던 것이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고종이 즉위 40주년이 된 것과 기로소에 들어간 일, 그리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 칭호를 사용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

거북받침과 몸돌, 지붕돌을 고루 갖춘 비석의 규모는 전체 높이 4.5m 몸돌 높이 2.5m 너비 0.95m 두께 0.4m이다. 

오석으로 된 몸돌의 상단 네 면에는 전서()로 ‘’이라 새겨져 있고, 비문은 앞면과 뒷면에만 있다. 

전액은 순종의 황태자 시절 글씨이고, 비문은 영의정 윤용선이 지었으며 글씨는 육군부장 민병석이 썼다. 

화강암으로 된 지붕돌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오얏꽃과 용의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비를 보호하고 장엄하기 위하여 건립한 기념비전은 조선 말기의 목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이중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겹처마 사모지붕 정방형 건물이다. 

화강암을 팔각으로 길쭉하게 다듬어 세운 주춧돌, 강건하지는 않지만 화려한 공포, 창방 하부와 기둥 양쪽을 장식하고 있는 낙양각에서

꽤나 화려하면서 곳곳에 세심한 배려가 베풀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난스레 긴 추녀와 사래가 하늘로 시원하게 뻗어오르는 품새나, 

그로부터 만들어진 처마선과 내림마루의 부드럽고 유장한 곡선의 흐름은 예사 솜씨로는 어림도 없을 만치 아름답다. 

기념비전은 궁내부에서 직접 관장하여 공사를 진행한 마지막 건축물로서 작지만 궁궐 목수의 솜씨가 발휘된 가작이다.

건물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구조물들 또한 예사롭지 않다. 남북 양쪽의 돌계단에는 해태가 앉아 있고 

사방을 두른 돌난간의 동자석 위에는 사신과 십이지상을 방위에 맞게 조각해 배치했는데, 궁궐 건축에 자주 등장하는 이 짐승 조각을 통해 

기념비전이 그에 버금가는 비중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전의 남쪽 정면에 세워진 만세문()은 화강암으로 네 개의 기둥을 세워 삼문을 만들고 

문마다 철골조의 쇠문을 단 보기 드문 형식으로, 가운데 기둥 위에는 주작을, 좌우 문 기둥 위에는 해태를 올려놓았다. 

돌기둥과 무지개 아치의 표면에 당초문을 새겨넣어 전체적으로 작은 구조물이지만 섬세하고 화려하며 조금은 이국적이다. 

무지개 아치의 가운데 새긴 ‘’ 글씨는 영친왕이 6세 때 쓴 것이라 전한다. 

만세문은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이 임의로 떼어다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후 원래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지금의 문은 1979년 해체 복원한 것이다. 기념비전은 전통적인 조영체제가 해체되기 직전인 20세기 초에 세워진 건물로 당시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기념비전 일곽은 사적 제171호로 지정돼 있다.

출저 : [네이버 지식백과]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초판 2004., 5쇄 2009., 돌베개)


신호 걸리지 않았을 때는 그냥 무심코 지나갔을 텐데..

또 하나 배우고 간다.